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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앞 3.5톤차량 불법주차 찍다 차주랑 대면 아직도 개충격인거 초등학교때 불륜하는 쌤들 망봐준적있음
    카테고리 없음 2019. 12. 14. 07:35

    드시던 삼청교육대 중대장 출신 (불명예제대하셨음)알콜중독 아빠 밑에서 태어나 급식비 못내 초등학교, 중학교 때도 교무실 앞에서 손 들고 벌을 서는게 늘 일상이였던 학창시절을 보냈습니다. (고등학교 때는 조금만 공부하면 장학금도 받고 지원을 많이해줘서 그 때부터는 급식비나 학교에 내는 비용은 집에서 부담하지 않음) 대부분의 생활비는 엄마가 버시고 정말 필요한 돈이



    교황을 만나 "제 고향(후쿠시마)을 찾아 원전 사고 피해자를 위해 기도해 주기를 바란다"고 요청했습니다. 교황은 소년의 손을 잡고 "가겠다" 답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24일 나가사키의 폭심지(원자폭탄 투하 지점)를 방문해 연설하고 있다. [출처=EPA·연합뉴스] '소각장 소년'과 나란히 선 교황 실제로 프란치스코 교황이 일본(23일~26일)에 왔습니다. 교황 방일은 1981년 바오로 2세에 이어 38년 만이었지만, 일본 내 분위기는 차분했습니다. 일본의 가톨릭 신자는 1억 2천 700만 명 중 0.35%(약





    문제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a) 인권의 주체는 사람: 무슬림과 난민을 이용, 개신교를 파괴하고 여당지지를 높이는 목적 b) 차별금지에 관한 기본법: 차별 금지법 입법 준비 c) 성인지 정책, 성 주류화: 동성애를 일반적인 ‘상식’으로 만들기 위한 국민 세뇌 목적 d) 인권차별 혐오적 방송내용 심의 강화 ‘동성애 반대’를 막겠다는 목적 e) 대체 복무제: 이단 확산으로 개신교 약화 목적 f) 군인원 자문위원회: 동성애





    시스템이 있어서 다행입니다. '놀면 뭐하니' 유재석, 故신해철부터 박토벤까지..천재들과 환상 협업(종합) 어린이집에서 성폭행을 당했습니다.제발 제발 읽어주세요 🔥촛불집회 버스대절 신청(업데이트)🔥 화나요 민식이법도 반창고식 대처일 뿐,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습니다. 엄마가 생각날때 언제인가요? [30금] 내 인생 최악의 남자 ㅋㅋㅋ 홍콩시위와 국내상황, 그리고 미래 지금까지 살았던 집과 이사에 대한 단상 정관수술 리얼후기 친족 성폭력 ‘그알’ 방송1193회 일본 피해자입니다. '제1 저자' 나경원 아들 유학 초중등교육법 위반" [분당]부린이의 소형아파트 매수 후기 김진표느 안되는 이유 민식이법 관련 논란에 대해. 이렇게 운전자가 이기적인 나라가 또





    무슨일이 있었는지 물으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그 시간 놀이터에서 둘째 그네를 밀어주고 있었고 10분 남짓이 지났을까요 큰 아이가 보이지 않아 찾으러 다니던 중 놀이터 옆 제가 사는 동 앞, 깜깜한 자전거 보관소 앞에서 제 아이를 발견했습니다 그 곳에서 뭐했냐고 다그치니 겁에 질린 표정으로 처음에는 "아니야 아니야"만 반복하던 아이를 진정시키고 집에 돌아와 제 품에 안으며 다시 물으니 그제서야 엉엉 울면서 하는 말이 어린이집 같은 반 남자아이가 자기 바지를 벗게하여 항문에 손가락을 집어넣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 깜깜한 자전거 보관서에서 가해진



    그러니까 외국어는 내가 재미있는 인생을 사는데 도움을 주는 도구라 생각합니다. 저는 아이가 영어 점수 만점 받아오는 걸 바라는게 아닙니다. 큰아이가 영어 학원 단어시험 10점 맞아와도 진심으로 괜찮다고, 이런 건 네가 점점 더 크고 많이 공부하다보면 저절로 알게 되는거라고 이야기 해 주었었습니다. language barrier 라는 말이 있습니다. 문자 그대로 언어 장벽이라는거죠. 저는 이 언어장벽을 극복하지 못 하고 사는데다 제가 부족하고 해 준 것이 모자라 아이들이 이 장벽을 못 느끼고 살수는 없겠지만,





    많이 부족한 아빠지만, 제가 실천해보고 좋았던 내용을 몇가지 공유해보려 글을 써봅니다. 아래글은 제가 책에 쓴 내용을 그대로 퍼온 것이기에, 존경체가 아닌 에세이 식의 글입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행복한 가정의 식탁은 거실에** 2009년 노르웨이로 처음 출장을 갔을 때, 직장상사는 나를 본인의 집으로 초대를 했다. 그리고는, 손수 만든 생선 수프와 양고기 스테이크를 대접해 주었고, 식사 도중 참가한 막내딸도 같이 식탁에 앉아서 즐거운 저녁을 즐겼다. 고등학생인 막내딸이 같이 식탁에 함께 하며 같이 웃고





    질문하면 대답을 회피한다던지 한국어로 하라고 짜증내는 상황이 생기기도 했죠. 결국, 더욱 재미있고 다양한 컨텐츠를 찾아 보여주고, 저의 조급함을 숨기고 더욱 천천히 접근하였더니 이제는 이런 난관이 다 사라진 상황입니다. 사실, 혼자 이렇게 하면서 (아내는 더 영알못이라.. ㅠㅠ) 이게 과연 올바르고 맞는 방법인가, 특히 큰 아이의 경우 항상 피드백이 늦는 편이라 영어로 Yes/No 대답하는데도 4년 정도 걸려서 참 고민이 많았는데, 우연히 이 영상을



    나날들이 왔으면 좋겠어 내가 가끔 이렇게 역겨운 기억들이 올라오는 것처럼. 어렸을때부터 따돌림을 많이 당했는데 맨날 기대하는게 바보같은데, 이럴때마다 과몰입하지말자고 다시 한번 깨닫는다 그래도 나 사실은 행복해지고싶어 팔자니 뭐니... 편하게 웃으며 만날 수 있는 인연들 쌓고 싶어. 그냥 내 양면성이 혼란스럽다ㅋㅋㅋㅋㅋ 너무 길어서 다 읽은 사람도 많이 없을거고 댓글 기대하는거 아니니까 부담갖지마ㅎㅎ 그래도 읽어준 사람이 있다면 고마워 이걸 읽어준것만으로 내 이야기를 들어준거고 위로가 된거야 정말 고마워 1961년, 당시 서울역 플랫폼 모습. 한복을 입은 사람들이 눈에 띈다. 당시 경상남도 지역





    소비를 해줘야 경제가 순환하는데 도무지 애를 낳지 않아서 이대로 가다간 초고령화 사회가 되어 경제구조 자체가 무너질 지경이다.. 다급해진 기득권층은 낙태 단속도 하고 보육비도 대주겠다고 신문광고도 하고 난리지만 “잉여 인생, 나로서 충분하다. 내 선에서 끝낸다. 자식까지 고통을 줄 순 없다..” “아직 로또가 안됐으니.. 로또 되면 낳아야지 ^^”라며 나쁜 의미든 좋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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